오늘은 확률과 통계 주제탐구 세특 주제로 확률의 역사 주제를 정리해보겠습니다.
1. 확률의 시작
확률 개념이 사용된 흔적은 기원전 3500년 경 주사위 놀이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양의 뒤꿈치 뼈라는 흔적에서 시작된다. 이 놀이는 그 후 로마 군인들이 즐겨하던 민속놀이로 발전합니다.기원전 300년 경 바빌론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담황색 도자기는 거의 완벽한 정육면체 주사위였습니다. 기원 후 850년 경 인도의 수학자들은 n개 가운데 r개를 택하는 방법의 수, 곱의 법칙, 같은 종류의 문자가 포함된 여러 문자를 정렬하는 방법 등에 관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1100년경에 이미 우리가 오늘날 파스칼의 삼각형이라 하는 것을 다루었습니다. 12세기 말 회교 국가에서는 조합론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졌으며 조합 규칙과 문제는 르네상스 시대의 교재에서도 발견됩니다. 또한 주사위 게임에 대한 이론적 탐구는 13세기에 이뤄지며 당시에 라틴어로 쓰인 시에서 주사위 세 개를 던지면 세 주사위 눈금의 합이 3에서 18까지인 56가지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단테의 신곡은 14세기 초 쓰였는데 역시 세 개의 주사위로 하는 게임에 관한 설명이 기록돼있습니다.
15, 16세기에는 이탈리아의 몇몇 수학자들이 도박장에서 제기된 주사위 게임에 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카르다노는 주사위 게임에 관한 아이디어를 정돈하고 확률에 대한 기본을 정립했습니다. 갈릴레이는 세 개의 주사위를 던졌을 때 눈의 합이 9인 경우와 10인 경우가 다른 확률로 나오는 이유를 수학적으로 설명했습니다. 17세기에는 확률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인 파스칼과 페르마 간의 서신 왕래가 이뤄지고 도박꾼 드 메레는 당시에 상당학 수학적 소양을 갖고 도박에서 성공을 거두는 일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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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인지 확률의 역사를 다룬다면 대부분 도박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확률 개념이 사용되는 많은 경우는 도박장으로 모델화될 수 있다.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가능성을 계산하고 그에 따른 손익을 따지는 것이 확률의 핵심적인 의미를 이루기 때문이다. 확률은 도박장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하여 과거와 현재에 관한 사전 정보를 해석하고 많은 관찰 자료를 토대로 특별한 경향을 추측하기 위해 이론화되었다.
베이즈를 중심으로 한 확률적 추론에 대한 연구, 많은 자료를 관찰하여 불확실한 현상을 설명하는 베르누이, 드 므와브르 그리고 라플라스로 이어지는 큰 수의 법칙에 대한 연구로 나타난다. 책카드는 사전 정보를 해석함으로써 사후 결과를 추측하는 것, 많은 관찰 자료를 토대로 특별한 경향을 확인하는 것을 확률적 현상에 대한 두 가지 수학적 접근으로 설명했다. 책카드는 이 두 가지 방법이 모두 불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확률적 현상을 객관적 정보의 표현 형태인 "수"로 바꾸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라 설명했다.
2. 도박꾼 드 메레와 파스칼과 페르마의 서신왕래
확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일화인 파스칼과 페르마의 서신왕래는 도박꾼 드 메레의 의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드 메레는 수학적 소양을 갖고 도박에 적용했었지만 두 가지 상황에서 그가 알고 있는 수학을 적용했을 때 다른 결과가 나오는 탓에 손해 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상황은 한 개의 주사위를 네 번 던졌을 때 적어도 한 번 6이 나오는 것에 내기를 걸면 유리한데, 두 개의 주사위를 24번 던졌을 때 적어도 한 번 (6, 6)이 나오는 것에 내기를 거는 것은 왜 불리한가?입니다. 드 메레는 6:4 = 36:24이므로 두 번째 경우도 마찬가지로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경험상 그렇지 않은 것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두 번째 상황은 이른바 "분배의 문제"로 교과서에서 종종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내기돈을 걸고 게임을 해서 먼저 5점을 얻는 사람이 내깃돈을 모두 가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4:3의 득점 상황에서 게임을 중단해야 한다면 내깃돈을 어떻게 나누어 가져야 하는가?입니다. 게임이 무산되었으므로 같은 액수로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분명히 4점을 딴 사람은 3점을 딴 사람보다 이길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더 많은 액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후자가 더 합리적인 생각이라는데 도달하였으니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 정확한 해결에 있어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도박꾼 드 메레는 당시에 수학자로서 명성이 높았던 파스칼에게 문제의 해결을 의뢰했고 파스칼은 첫 번째 문제는 쉽게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고민했고 파스칼은 수학적으로 많은 업적을 쌓고 있었던 페르마와 함께 올바른 해결 방법을 두고 논의했습니다. 페르마는 조합적인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였으며 병산에서 페르마의 편지를 받은 파스칼은 그 방법이 너무 어려워서 다른 해법을 연구한 끝에 수형도를 이용한 풀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3. 파스칼과 페르마의 서신 왕래 이후 확률론의 발전
파스칼과 페르마의 편지에서 '전체 가능성, 우연의 정도가 같다.' 등 현대 확률론에서 사용되는 용어도 발견되었습니다. 파스칼과 페르마라는 시대의 천재들의 서신왕래는 당시 유럽의 확률론에 불씨를 일으킵니다.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하위헌스는 파스칼과 페르마의 연구에 주목했고 1657년 확률론에 관한 최초의 책인 주사위 게임에 관하여를 출판합니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기댓값에 관한 아이디어가 수학적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 보험, 의학, 사회과학, 천문학, 기상학 등에서 새롭게 주목을 끌고 있는 확률 개념을 도입하여 과학성을 확보받게 되며 17세기 말 스위스의 수학자 베르누이는 추상적인 확률론에 통계적 관점을 도입함으로써 더 다양한 분야로 응용하게 됩니다. 1730년 드 므와브르는 오늘날 이항 분포에 대한 정규 근사로 일컫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1733년 기회의 원리라는 저서에서 이를 발표합니다. 드 므와브르는 이 연구에서 대칭인 이항 분포에서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범위 내에 있을 확률을 구하는데 이는 최초의 정규분포로 간주합니다. 이후 라플라스는 이 연구를 활용하여 중심 극한 정리를 이끌어 내게 됩니다. 확률론은 수학뿐 아니라 물리학과 천문학 등에 영향을 미쳐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이후 베이즈와 심슨을 중심으로 확률론을 추론에 응용하는 노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1809년 가우스는 행성의 궤도에 관한 논문에서 관찰 값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주목했습니다. 직접 관찰한 값에 대한 오류의 가능성, 즉 오차에 관한 확률적 판단에 관심을 두었고 이를 기반으로 정규 분포에 관한 다각적 연구에 몰두하여 다양한 성취를 이뤘습니다. 또한 영국의 베이즈는 조건부 확률에 대한 근간인 베이즈 정리를 확립했고 심슨은 확률적 사고가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확률의 이론은 점차 발전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며 4차 산업의 인공지능을 이루는데 큰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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